[COLUMN] 시계와 로봇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 쟈케 드로의 오토마타 정대상 기자입력 2018-03-08 11:56:33

수동 시계에는 아름다운 기계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마이크로 단위의 부품 가공 기술과 이를 조립하는 기술, 다이얼을 아름답게 조각하는 기술과, 시계의 내구성을 확보하는 열처리 기술, 그리고 외관을 눈부시게 가공하는 연마기술이 모두 적용된다.

여담이지만, 필자 역시 기계식 시계에 담긴 장인들의 철학을 좋아한다. 예거 르쿨트르, 브라이틀링, 그랜드세이코 등 나름의 철학을 지닌 시계들을 몇 점 겪어봤고, 최근에는 자케 드로(Jaquet Droz, 혹자는 야그 드로라고도 부른다)의 ‘Grande Seconde Moon Phase’에 빠져있다.

 

 

자케 드로의 Grande Seconde Moon Phase(사진. 자케 드로 홈페이지 갈무리)

 

서비스 로봇은 이 기계식 시계를 제작하는 기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전체 로봇 시장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1961년 유니메이션을 시초로 하는 제조용 로봇이다. 하지만 서비스 로봇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 18세기에 등장했던 오토마타(Automata)를 시초로 삼는다.

이 오토마타의 시작은 18세기, 천재적인 시계 제작자 자케 드로가 시계를 ‘많이 팔기 위해’ 장식이 움직이는 시계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스페인의 왕 페르디난도 6세는 자케 드로가 장식이 움직이는 시계를 선보이자 경악하며 그에게 사형을 내렸다고 한다. ‘움직이는 인형’이 당시의 기술 수준에서 ‘사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자케 드로가 왕에게 시계의 핵심인 기술 메커니즘을 공개했을 때, 왕은 그의 기술을 극찬하며 움직이는 태엽 인형 제작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게 오토마타의 시작이다.

 

자케 드로의 오토마타(사진.wikimedia)

 

로봇은 시대를 막론하고 최첨단 기술의 총아이다. 자케 드로가 톱니바퀴와 태엽으로 글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오토마타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AI)과, 음성·안면인식기술과, 빅데이터와, 클라우드가 톱니바퀴와 태엽을 대신한다.

요컨대, 우리 서비스 로봇 업계에 필요한 요소 또한 약 18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 창출이 기대되는 핵심 기술에 대한 조예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 기술로 결과를 꽃피울 수 있는 페르디난도 6세의 안목과 결단도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08년 9월 29일 지능형로봇개발및보급촉진법, 속칭 지능형로봇법을 제정하고 올해로 만 10년간 국내 로봇업계 발전에 매진했다. 정확하게는 서비스 로봇 업계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 속에서 긍정적이었던, 또는 아쉬웠던 정책들이 많았지만, 불모지와 같은 우리 로봇계에 거름이 된 것은 사실이다.

최근 지능형로봇법 개정안 국회통과를 두고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0년의 세월 중 아쉬웠던 점은, 우리 정부가 ‘자케 드로’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닌가, 라는 부분이다. 황무지를 개간함에 있어 밭을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10년 간 밭만 갈다 이제야 씨를 뿌리는 형국이다.

가장 큰 원인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선별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목적이란 당연히 시장성이다.

 

KAIST의 휴보(사진. Wikimedia)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우리 정부의 로봇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정책 기조가 인큐베이팅에서 보급사업으로 변화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성과는 미비하지만, 지난 10년의 자맥질 속에서 나름 탄탄한 근육을 키워온 것이야 말로 지난 지능형로봇법의 진정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새롭게 취임한 로봇업계 중역으로부터 이번 지능형로봇법 개정안의 변화에 대해 살짝 귀동냥할 기회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컨트롤타워가 되고, 지역별 테크노파크, 로봇센터 등을 거점으로 삼아, 각 지자체별로 산재되어 있는 로봇 중복 사업들을 체계화하고 전문적·효율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최근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임 원장에 임명된 문전일 원장의 실사구시적 행보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개정안은 더욱 우리 로봇업계에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실질적으로 진흥원의 역할이 전국 단위 로봇 사업 추진의 핵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버려지는 기술보다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추구하는 문 원장의 욕심은 제조용 로봇은 물론 서비스 로봇 분야의 시장 확대 기여에 긍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계를 많이 팔겠다는 자케 드로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던 오토마타는 뇌샤텔 박물관에서 약 230년이 지난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뛰어난 기술자의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과, 그 기술의 가치를 알아본 국가의 지원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새로운 지능형로봇법 개정 입법을 앞둔 지금, 정책기획자든, 참여기업이든 자케 드로의 이 짧은 이야기를 한 번쯤 생각하기를 바란다.

 

필자. 월간 로봇기술 정대상 기자

정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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