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

지혜로운 자녀 경제 교육 정대상 기자입력 2018-04-09 19:19:46

최근 들어 자녀 금융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뜨겁다. 돈이 중요한 시대라고 모두가 공감하기에 사교육 못지않게 금융교육시장도 점차 커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막상 어린 자녀에 대한 경제교육의 현재 상태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사지선다형 시험지에 익숙한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는 금융교육에서도 역시 정답 맞추기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자녀를 부자로 만들기 위한 방법과 수단 찾기에만 매몰되어 ‘결과중심적 솔루션 교육’에 빠져 있는 셈이다. 

 

올바른 자녀 경제 교육을 위한 지침
많은 부모들이 돈 벌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려고 엄청난 사교육비와 시간을 투자하지만 진정한 자녀자립심을 키우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본다. 이런 결과 중심적 솔루션 교육만을 계속하다가는 부모가 자녀의 자립 능력을 빼앗는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 가게 물려받으면 된다’라거나 ‘내가 준비 안 해도 부모의 손을 빌어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는 쉬운 생각을 갖게 되어 부모의 노후에 걱정의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가족 공동체안에서 제대로 된 경제교육이 되지 않은 내재적 문제가 크다. 부모 자신이 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돈을 벌어야 할까? 어디에 돈이 필요할까? 아버지가 돈을 버는 생업의 현장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렇게 번 돈은 어디에 소비되고 있는가? 돈의 필요성을 어떻게 저축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나의 필요뿐만 아니라 내가 채워야 할 다른 사람의 필요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부모 스스로 답하면서 자녀와 함께하는 밥상머리에서 이야기 교육이 펼쳐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 안에서 자녀를 지혜롭게 안내하기 위한 길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나, 자녀가 올바른 재정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라
우선, 부모는 자녀들이 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자녀들의 마음에 돈에 대한 올바른 관점, 재정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 줘야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녀의 재정관은 무조건 돈을 최우선시하는 배금주의에 빠지거나 어느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책임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생 6,000명을 대상으로 윤리조사를 한 결과 10억 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교도소에 갔다 올 수 있다는 비율이 나이를 먹을수록 높아진다(흥사단 조사 결과). 인생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건만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우리 자녀에게 이토록 뿌리 깊게 박혀 있다니 새삼 놀랍다. 대학생과 어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도 더 높지 않을까 우려된다. 훗날 자녀가 성인이 되어 돈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돈으로만 해결하려든다면 상당 부분 부모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녀가 빠질 수 있는 배금주의의 극단과 더불어 또 하나의 극단은 바로 무기력, 무감동, 무책임의 극단이다. 요새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은 아무런 욕구가 없는 듯 보이는 경우가 많다. 15년 전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자녀들이 그랬듯이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도 무기력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에 조금도 감동하지 않고, 당면한 일에 무책임한 반응을 보이는 극단에 서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무책임의 극단에 빠지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자녀는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재산이 자기 재산인 줄 착각하고 부모의 집과 차, 돈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급기야 자기를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기는커녕 원망하고 불평하며 심하면 패악을 부리며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까지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줄줄 샌다. 그런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소위 부모의 품 안에 머무는 캥거루족, 부모 집을 떠나지 못한 채 기생하며 부모와 함께 늙어가는 패러사이트 싱글족, 부모의 연금을 갉아먹는 키퍼스족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재산은 부모의 것이고 자녀의 것이 아님을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 


특히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는 ‘자녀의 미래 모습(내 눈이 보는 상이 아니라 바라는 상)’을 그리고 그에 걸맞게 대해야 한다. 만약 “너는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아니?” “그렇게 살아서는 나중에 밥 벌어 먹고 살기 어려워!”라고 다그치며 현재 보이는 모습만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의 마음만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런 말은 잘못된 닻을 내리는 무서운 예언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잘못 내린 닻의 상처는 여간해서 치유되기 어려우며, 어쩌면 평생 자녀의 재정적인 자립과 여유로 가는 길을 막을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이들이 재정적으로 풍성한 사람이 되리라는 소망으로(바라는 실상) 자녀에게 말하고 가르쳐야 한다. 돈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자녀에게 “어떻게 하면 그걸 할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의 말을 해보자. 가능성을 차단하는 말보다 가능성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일이 자녀의 재정관을 아름답게 가꾸어줄 것이다. 부모가 가난한 인식으로 자녀를 대접한다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자녀를 그에 따라 대접할 것이다. 반대로 부모가 아이의 풍요한 미래를 보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인식으로 자녀를 대접할 것이다. 세상 이치는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자녀에게도 그 이치는 적용될 것이다.

 

둘, 직업과 학문을 연계해서 가르쳐라
자녀들의 마음에 형성되는 재정을 보는 관점을 보호하고, 미래의 자녀상을 바라보며 말하고 가르치려면 어떤 길이 가장 좋을까? 바로 현장교육이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생업현장을 함께 공유하고, 현실의 필요를 위해 부모가 저축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늙어서도 경제적으로, 독립적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현장교육에서 우리가 배울 대상은 유태인 가정이다. 조상대대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직업과 기술을 전수하는 유태인 전통은 학문과 생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아무리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y), 위험한(Dangerous) 3D의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산다면 이는 절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남의 원조를 받는 것보다 자랑스러운 일인 것이다. 유대인은 부모가 흑인촌에서 장사를 하면 방과 후나 방학 때 자녀들이 부모의 일을 돕도록 한다. 우유 상자도 나르고 청소도 하게 한다. 그리고 부모의 영어가 서투르면 통역도 하게 한다. 가게가 도둑맞는 장면도 보게 한다. 부모가 억울하게 갱들에게 권총으로 위협받는 모습도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가족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자녀들은 부모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게 된다. 한 가족의 고통을 다 같이 분담하는 것이다.


특히 유태인들은 자신의 생업을 자녀들과 공유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일을 단순한 생계유지의 방편으로, 돈을 버는 통로로 인식하며 안타깝게도 생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유태인들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만족의 원천(Man’s Source of Satisfaction)이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나는 부모들이 생업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보여주고 자녀에게 알려주며 일에서 얻는 기쁨과 땀 흘리는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녀에게 “너희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잘해”라고 말하기보다 아빠와 엄마의 삶의 터전에서 느낀 점을 공유하며 자녀들이 일의 기쁨을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자녀들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상황 속에서 다양한 경제적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의 순간 어떠한 의사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자녀 인생의 재정 상태는 다른 숫자로 나열될 것이다.


물론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지혜롭고 올바른 경제적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몇 번의 경제교육으로 단숨에 터득할 수 없다.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는 자기점검을 거치며 훈련되어야만 자녀는 좋은 경제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교사는 부모이며, 제일 훌륭한 교실은 생업의 현장이다. 자녀는 부모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고, 생업은 훌륭한 교육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자녀는 성장하면서 부모의 삶을 보고, 느끼고, 부모가 하는 말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자녀에게 당장 해야 할 학업만 다그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자녀들과 삶의 현장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자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켜주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 자녀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학문은 생업이 펼쳐지는 부모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셋, 자녀가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자
정말 필요한 순간에 주는 부모의 작은 도움이 자녀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힘이 된다. 그런데 이를 거꾸로 하고 있는 부모가 많은 것 같다. 열 살이 채 안 된 자녀에게 능력을 넘어선 돈을 퍼붓다가 정작 자녀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돈이 없어 쩔쩔매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이는 예선전에 올인하다가 정작 중요한 본선 문턱에서 좌절하는 코치와 같다. 


만일 부모가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적인 순간 돈이 떨어지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현재 재정을 일정 부분 공유하며 자녀들이 부모와 협의하며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과도한 기대가 아닌 적절한 기대, 감사가 수반된 기대를 할 수 있도록 자녀와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자. 어렵지만 그 길이 자녀를 독립적으로 강하게 키우는 비결이 될 것이다.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기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 ‘자녀의 요람부터 부모의 무덤까지’가 될 수도 있다(이는 저자가 처음 만든 말이다). 충동구매와는 거리가 먼 사람조차도 자녀에게 좋다고 하면 사교육시장에서 지갑을 쉽게 연다. 물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를 위해 최고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자녀가 하고 싶다고 해서 무작정 지원한다거나, 부모에게 최고로 보이는 것을 모두 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장기적인 자기만의 원칙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하는 것이 우선이다. 당장 교육비에 쓸 돈과 자녀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돈을 나누어 준비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지출하고 있는 자녀교육비를 냉정하게 점검해 보자. 투자의 효과를 전혀 확신할 수 없다면, 투자의 효과가 극대화될 때까지 그 돈을 은행에 맡겨 복리로 운용한 다음 아이가 자란 후 자립할 밑천으로 주는 것이 어떨까? 몇 십만 원 들여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해서 자녀교육이 성공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이 정말 필요한 시기는 아주 어린 시절이 아니라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보다는 대학교에 다닐 때, 대학교에 다닐 때보다는 자녀가 가정을 형성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유태인 가족공동체의 시스템적 접근이 매우 부럽다. 우리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할 때 비빌 언덕을 시스템적으로 만들어주는 유태인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전 세계 인구의 0.2%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한 유태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100배 이상 자녀교육을 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그들의 좋은 면은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태인의 자녀교육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유태인의 성인식’인 바르-미츠바(Bar Mitzvah)다. 우리나라는 만 20세가 되었을 때 성인식을 하지만 유태인은 만 13세를 율법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때로 보고 바르-미츠바를 거행한다.


바르-미츠바를 하는 날 소년은 부모와 친척, 초대받은 친지들로부터 축의금을 받는다. 축의금은 부모의 능력이나 하객의 신분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미국에 사는 유태인의 경우(미국의 유태인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이다) 5만 달러(한화로 5000만 원이 넘는 돈이다)에 이른다고 한다. 그 축의금은 부모가 손을 대지 않고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고스란히 자녀를 위한 밑거름자산으로 적립되고 운용이 된다. 자녀는 13세에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경제적 독립을 위한 종잣돈(Seed Money)을 마련한 셈이다. 


자! 그 종잣돈을 연복리 7%로 대략 10년 후 대학졸업시기인 23세까지 운용하면 2배인 1억 원이 되고, 20년 후 요즘 남성의 결혼 시기가 되면 4배인 2억 원이 된다. 자그마한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을 갖고 출발하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도 자녀에게 무작정 독립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어느 정도 비빌 언덕은 만들어주는 장기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정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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