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 업계가 보안 강화를 위한 물리적 유심(USIM) 칩 전면 교체 카드를 꺼내 든 가운데,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에서는 물리적 제약을 획기적으로 줄인 차세대 e심(eSIM) 기술 도입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외 통신 기술 및 하드웨어 정책의 변화 기류를 짚어본다.
KT 김영섭 사장, “전 고객 유심 교체 준비 막바지”
김영섭 KT 사장이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KT 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유심 칩 교체를 준비 중이라고 공식화했다. 김 사장은 실무 차원에서의 준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며, 오는 11월 4일로 예정된 이사회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과거 경쟁사의 해킹 사태 당시 발생했던 이른바 ‘유심 대란’과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김 사장은 고객들이 대거 줄을 서거나 교체 과정에서 불편을 겪는 상황을 막기 위해 충분한 재고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사회 의결이 떨어지는 즉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다는 의지다.
위약금 면제엔 신중론, “수사 결과 종합 판단”
다만 김 사장은 전 고객 대상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타 통신사가 해킹 피해 확인 여부와 관계없이 번호 이동 고객의 위약금을 면제해 줬던 전례를 들며 KT의 적극적인 보상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현재 피해가 확인된 2만 2천여 명에 대한 보상은 진행하고 있으나, 전체 고객으로의 확대 적용은 합동조사단이나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 및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국경 없는 연결성,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e심 전환
국내 통신사가 물리적 유심의 보안과 교체 문제로 고심하는 사이, 글로벌 마이크로 모빌리티 산업은 물리적 심 카드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량 전기차(LEV) 기술 기업 코모듈(Comodule)은 최근 사물인터넷(IoT) 연결성 제공 업체인 1oT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진화된 e심 솔루션을 자사 시스템에 통합했다.
기존의 공유 스쿠터나 전기자전거는 특정 국가나 통신사에 귀속된 심 카드를 사용했기에 국경을 넘거나 시장을 철수·진입할 때마다 물리적으로 칩을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e심 기술이 도입되면서 원격으로 네트워크 프로파일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차량의 하드웨어를 건드리지 않고도 기기를 다른 시장으로 재배치하거나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벤더 종속 탈피와 인프라 독립성 확보
이번 기술 제휴에서 주목할 점은 2024년 발표된 GSMA SGP.32 표준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통신 벤더에 대한 종속성(Lock-in)을 없애고 운영자가 ‘인프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제 모빌리티 운영사들은 현지의 요금 정책, 신호 강도, 커버리지 범위에 따라 최적의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1oT의 마트 크로도(Märt Kroodo) CEO는 이에 대해 “e심 기술이 연결성을 고정된 자산에서 통제 가능한 변수로 전환시켰다”라고 평가했다. 통신망 품질이 저하되거나 가격 변동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80만 대 이상의 차량을 연결하고 있는 코모듈은 이번 e심 도입을 통해 심 카드 재고 관리 부담을 덜고, 계절적 수요나 국경 간 이동이 잦은 모빌리티 시장 변화에 더욱 민첩하게 대응할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