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형태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는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이 도발적인 선언의 이면에는 인공지능(AI) 수요 폭발을 등에 업고 기록적인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가 자리 잡고 있다. 범용 소프트웨어를 들이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쏟아붓던 시대가 저물고, 그 거대한 공백을 이들의 AI 플랫폼이 무서운 속도로 집어삼키는 중이다.
시장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은 폭발적인 4분기 실적이 그 생생한 증거다. 팔란티어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나 폭증한 14억 700만 달러(약 2조 5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LSEG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 13억 3000만 달러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성장세를 이끈 쌍두마차는 단연 미국 내 상업(민간) 부문과 정부 부문이었다. 특히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은 무려 137%나 솟구치며 5억 700만 달러를 달성, 70% 증가한 정부 부문 매출(5억 7000만 달러)과 덩치를 나란히 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44억 7500만 달러라는 묵직한 성적표를 거머쥐었고, 4분기 조정 주당순이익(EPS) 역시 25센트로 시장 기대치를 상회했다. 투자자들은 즉각 환호했다. 정규장에서 소폭 상승했던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시간외 거래에서 7% 이상 튀어 오르며 159달러 선을 위협할 정도로 뜨겁게 반응했다.
이러한 상업 부문의 드라마틱한 확장은 단순히 영업 전술의 승리가 아니라, 기업용 소프트웨어 구축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집혔음을 의미한다. 팔란티어의 배포 전략가 대니 루커스(Danny Lukus)는 기존의 SaaS 모델이 수명을 다했다고 단언한다. 과거에는 공급망 관리처럼 복잡다단한 시스템 하나를 도입하려면 컨설턴트 부대를 동원해 몇 달씩 타당성 조사를 거쳐야만 했다. 수백만 달러를 태우고도 코딩 한 줄 시작하지 못하는 악몽 같은 상황이 기업들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앤스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나 오픈AI(OpenAI)의 코덱스(Codex)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이 판을 엎었다. 이제 전진 배치된 엔지니어들은 기업 현장에 들어가 즉석에서 AI로 맞춤형 코드를 짜내고, 작동 모델을 구축하며, 실시간 피드백을 통해 완벽한 솔루션을 빚어낸다.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그야말로 수직 낙하한 셈이다.
물론 회의론자들은 여전히 날을 세운다. AI가 뚝딱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낼 순 있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규제와 무역 관세 등에 맞춰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고 스케일링하는 데는 결국 인간 전문가의 세밀한 터치가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루커스는 이마저도 일축해버린다. 코드 테스트와 스케일링 같은 험난한 과정조차 생성형 AI가 자동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팀이 수백 쪽짜리 서류와 씨름하며 규제를 따라잡는 대신, 특화된 AI 에이전트들이 정부 웹사이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 그만이다. 각자의 지휘 체계 안에서 특정 역할을 부여받은 다수의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소통하며 비즈니스 운영 전반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AI가 굳이 ‘신적인 지능’을 가질 필요조차 없어진다. 인간의 역할을 충실히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비즈니스의 톱니바퀴는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이러한 AI의 파괴력은 팔란티어의 근간이자 주력 텃밭인 국가 안보 영역에서 한층 더 복잡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알렉스 카프(Alex Karp) 최고경영자는 주주 서한에서 이번 실적을 두고 “우리의 가장 야심 찬 기대치마저 능가했다”며, 자신들의 작업 방식을 기꺼이 수용하거나 최소한 거부하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진 ‘우주적 보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짙은 그림자도 존재한다.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의 불법 이민자 단속에 팔란티어의 도구가 쓰이는 것을 두고 실리콘밸리 일각에서는 계약 철회를 요구하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흥미로운 건 카프의 단호한 스탠스다. 그는 타협은커녕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팔란티어의 AI가 필요하다”고 맞받아쳤다. 자사의 소프트웨어가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4조를 엄격히 준수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국가 안보를 재편하는 동시에 정부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는 대담한 논리다.
올해 1분기 15억 3000만 달러대, 연간 71억 8000만 달러 이상을 바라보는 팔란티어의 가파른 실적 가이던스는 단순한 재무 전망을 넘어선다. 이는 AI가 단지 코드를 짜주는 보조 도구에 머물지 않고, 수십 년간 고착화되어 온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철저히 해체하고 재조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날것의 증거다. 도덕적 논쟁이나 기성 테크 업계의 반발 속에서도, 이들이 벼려낸 AI 시스템들은 이미 조용히 기업과 정부의 심장부 가장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