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메모리 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최근 주가 흐름은 꽤나 역설적이다. 시장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시간 외 거래에서 6% 이상 급등했던 주가가 21일(현지시간) 정규장에서는 오히려 8%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마이크론은 전 거래일 대비 7.93% 내린 94.8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실적 발표 직후 110달러 선까지 치솟았던 기대감이 무색하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장중 100달러 선을 내준 것이다.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1.06% 내리고 AI 대장주 엔비디아 역시 0.8% 하락하는 등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도 무거웠다.
외형적인 성장은 흠잡을 데 없었다. 2025 회계연도 2분기(12∼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늘어난 79억 1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1.56달러로 모두 월가의 예상치를 가볍게 상회했다. 엔비디아에 꾸준히 공급하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매출이 우수한 제조력과 수요 폭발에 힘입어 1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마이크론이 제시한 현재 분기(3∼5월) 매출과 EPS 가이던스 역시 각각 88억 달러, 1.57달러로 시장의 눈높이를 웃돌았다.
문제는 이익률이었다. 지난 분기 37.9%의 조정 이익률을 기록하며 분석가들의 평균 전망치인 38.4%에 미치지 못했다. 현 분기 예상 이익률마저 36.5%로 실망스러운 수준을 보였다. 이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마이크론 측은 낸드 업계의 팍팍한 시장 환경을 언급하며 향후 업황이 개선되면 실적 역시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AI 인프라의 핵심으로 거듭나는 메모리 반도체
이러한 단기적인 이익률 우려에도 시장 조사 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메모리 반도체가 AI 솔루션의 패시브 하드웨어에서 핵심 요소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묵직한 의미를 둔다. AI 모델의 덩치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더 빠른 데이터 접근 속도와 막대한 용량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AI 인프라의 각 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 대역폭과 데이터 이동 속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HBM4, SOCAMM2, PCIe 6세대 SSD 등 차세대 혁신 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는 중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전력 효율성이다. 막대한 에너지를 먹는 AI 산업에서 전력 소비는 가장 큰 병목 현상이다. 마이크론은 HBM3E에서 30% 이상의 효율 향상을 이뤄냈고, 차세대 HBM4에서는 전 세대 대비 약 20%의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SOCAMM2의 경우 기존 DDR5 대비 전력 소비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으며, 6세대 SSD는 와트당 성능을 두 배까지 끌어올렸다.
장기 밸류에이션과 엇갈리는 시장 지표
애널리스트들은 기업의 기초 체력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2026년 6월 24일로 예정된 실적 발표를 전후로 마이크론의 펀더멘털이 다시 한번 강한 모멘텀을 받을 전망이다. 추정치에 따르면 EPS는 전년 동기의 1.91달러에서 무려 18.92달러로 껑충 뛰고, 매출은 93억 달러에서 334억 8천만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수익비율(P/E)은 20.1배로 동종 업계 대비 적정한 밸류에이션으로 평가받는다.
월가의 목표 주가 평균은 517.08달러에 형성되어 있다. 최근 매수 등급을 유지한 채 UBS와 JP모건은 목표가를 각각 535달러, 550달러로 상향 조정한 반면, 씨티그룹은 425달러로 눈높이를 낮추기도 했다. 벤징가 프로 데이터 발표 시점 기준, 마이크론 주가는 52주 최고가인 471.34달러에 근접한 456.62달러 부근에서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VLUE(9.49%), ARTY(7.41%), MUU(9.44%) 등 주요 상장지수펀드(ETF)에 마이크론이 상당한 비중으로 편입되어 있어, 대규모 자금 유출입 시 기계적인 자동 매매가 주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다음 타자, 전력망을 쫓는 스마트 머니
반도체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밸류에이션이 팽창하면서 거액을 굴리는 스마트 머니의 흐름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반도체 거래는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AI 1단계 랠리에서 엔비디아를 비롯한 칩 제조업체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투자자들은 이제 모든 데이터센터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핵심 인프라, 즉 ‘끊김 없는 전력’으로 포지션을 옮기고 있다.
고도화된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전력이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현재 이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천연가스와 원자력 정도뿐이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다수의 신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한 규모가 작은 에너지 관련 기업들로 시선을 돌리며, 칩세트를 넘어선 AI 산업의 다음 단계를 선점할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