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제국의 균열과 인텔의 5조 달러 베팅: AI 패권의 대이동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행사에서 인텔의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의 입을 통해 꽤 도발적인 선언이 나왔다. 유능한 GPU 설계 총괄책임자를 영입했으며, 고객사와 밀착해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GPU가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버용 CPU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면서도 GPU에서는 만년 찬밥 신세였던 인텔이, 1.4나노(14A) 파운드리 사업 본격화와 함께 엔비디아의 안방을 대놓고 노리겠다는 선전포고를 날린 셈이다.

이 발표를 지켜보는 테크 업계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엔비디아’ 세 글자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AI 시대의 절대 권력자로 등극한 엔비디아가 최근 핵심 파트너들과의 삐걱거림, 판매망 축소 같은 악재들로 흔들리는 미묘한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2.84% 빠지며 3거래일 연속 미끄러졌고, 불과 3일 만에 시가총액 3000억 달러(약 435조 원)가 증발해 버렸다. 업계 곳곳에서는 단기간에 맹렬하게 쌓아 올린 엔비디아 제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돈다. 이른바 ‘탈(脫)엔비디아’가 업계 전반의 뉴노멀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 탈주극은 꽤나 전 지구적인 스케일로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엔비디아는 AI 학습과 운용에 필수적인 GPU 시장을 80%가량 씹어 먹고 있었지만, AI 열풍을 타고 칩 가격이 개당 수천만 원으로 미친 듯이 뛰고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어지자 넌더리를 낸 빅테크들이 직접 맞춤형 칩 설계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이미 작년에 7세대 TPU 아이언우드를 내놨고 올 하반기 8세대 모델로 엔비디아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 심산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TSMC 3나노 공정을 태운 추론 특화 칩 ‘마이아 200’을 꺼내 들었고, 전력 효율을 극대화한 AWS의 트레이니엄3, 메타의 MTIA-v3도 줄줄이 출격을 대기 중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맞춤형 AI 칩 점유율이 27.8%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는데, 빅테크 서버에 자체 칩이 꽉꽉 들어차면 엔비디아 매출엔 직격타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미국의 중소 테크 기업들마저 인텔을 새로운 대안으로 삼으며 탈엔비디아 대열에 합류할 명분이 커졌다.

여기에 미·중 갈등의 불똥도 제대로 튀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의 수출 통제 검토가 길어지면서 H200 같은 AI 가속기의 중국 내 물량 이동이 꽉 막혀버렸다. 중국 고객들마저 판매 조건이 명확해질 때까지 주문을 멈춘 상태라, 작년 말 젠슨 황 CEO가 호언장담했던 연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매출은 아직 실체 없는 신기루에 머물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영혼의 단짝 같았던 오픈AI와의 불화설이다. 엔비디아는 오픈AI에 대한 투자 규모를 줄이려 하고, 오픈AI는 엔비디아 GPU 성능에 불만이 쌓였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젠슨 황과 샘 올트먼이 직접 나서서 진화하긴 했지만, 시장의 의심쩍은 눈초리는 여전하다. 실제로 최근 블룸버그 보도를 통해 엔비디아의 신규 투자액이 200억 달러 수준에 그칠 것이라 알려지면서, 과거 언급됐던 ‘최대 1000억 달러’엔 한참 못 미친다는 게 드러났다. 결국 오픈AI가 브로드컴과 손잡고 올 하반기 자체 칩을 깐 10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행보는 이들의 장기적인 결별을 암시한다. 예전엔 다들 쿠다(CUDA)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묶여 울며 겨자 먹기로 엔비디아 칩을 썼다지만, 이젠 오픈소스 기반의 대체재가 널렸다. 더 이상 엔비디아에만 목맬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월가 일각에선 인텔을 향해 믿기 힘든 수준의 장밋빛 전망을 던지고 있다. 글로벌 에퀴티 리서치의 트립 초우드리 애널리스트는 인텔의 단기 목표 주가를 200달러로 꽂아 넣더니, 종국에는 시가총액 5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기업 가치에 도달할 거란 과격한 주장을 내놨다. 여전히 막대한 영업 손실에 허덕이고 18A 공정 수율에 대한 물음표가 가시지 않은 인텔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꽤나 극단적이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심플하면서도 묵직하다. 엔비디아를 배 불렸던 ‘AI 학습(Training)’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AI 추론(Inference)’과 ‘애플리케이션’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 즉, GPU가 과거라면 CPU가 미래이며, 2026년 이후는 인텔 18A 제온 서버 칩과 팬서 레이크(Panther Lake) 노트북 프로세서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거란 얘기다.

그는 AI 추론 시장이 학습 시장보다 무려 8배나 커질 거라 내다봤다. 특히 엣지(Edge) AI가 데이터센터 AI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을 텐데, GGUF(GPT Generated Unified Format)가 인텔 하드웨어 위에서 로컬 AI 추론을 미친 듯이 가속할 거라 분석했다. 여기서 나온 펀치라인이 꽤나 자극적이다. “인텔 18A 팬서 레이크 노트북이 곧 새로운 데이터센터다.” 이게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닌 게, 팬서 레이크가 700억 개 파라미터의 거대언어모델(LLM)을 13만 4000개의 컨텍스트 길이로 돌리며 180 TOPS의 연산 성능을 뽑아낸다고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데이터센터 하나를 통째로 갈아 넣어야 가능했던 퍼포먼스를 노트북 한 대에서 구현한다는 뜻이다. 무거운 연산 작업이 하이퍼스케일러 인프라에서 엣지로 넘어오는 이 거대한 변곡점을 인텔의 차세대 칩이 그대로 낚아챌 거란 계산이 깔려 있다.

파운드리 제조 역량에 대한 초우드리의 뷰는 한술 더 뜬다. 인텔이 GAA(Gate All Around) 트랜지스터 구조와 후면 전력 공급(Backside Power Delivery) 기술에서 TSMC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서 있다고 못 박았다. 나노(nm) 시대를 TSMC가 호령했다면, 다가올 옹스트롬(A) 시대(18A, 14A, 10A)는 온전히 인텔의 독무대가 될 거라며 TSMC의 철옹성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물론 독립적인 애널리스트들이 이 ‘7년 격차론’에 섣불리 동의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TSMC 역시 2나노(N2) 공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말이다.